[11 Feb 2018] 불면증

지나치게 목표를 세워서일까, 하품이 계속 나오고 피곤한데 잠이 오질 않는다. 차라리 밤을 세버릴까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건 뭐, 잠들긴 글렀다고 봐야한다.

누워서 두시간정도를 그냥 생각만하다가, 정신 좀 차리고 문제를 살짝 풀고 운동이나 갔다오려고 한다. 한 것도 없고 잠이 안 올 정도로 말짱해서 정신을 차리려고 하는 지금 이 상황도 어이가 없다.

오늘 잠을 못 잔 이유는 평소와는 다르게 오로지 공부에 대한 생각은 아니었다. S때문이었다. 어짜피 알려지지 않을 이 블로그를 누가 보고 이 글을 누가 보겠냐만은, 실명을 쓰고 싶지는 않다. 

어느덧 세상을 떠난 지 이번 5월이면 만 8년이다. 그리고 불과 22살의 나이였는데, 어떻게 그렇게 성숙했을까싶다. 물론 내가 그 때 어렸기에 그렇게 느껴진 것이겠지만, 그에 대한 기억은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장례식에 오라는 그 문자는 잊혀지지 않고, 그 전날 나는 무엇을 했는지, 그 당일 나는 무엇을 했는지도 생생하다. 그리고 잊고싶지않다.

그 전날 술을 많이 마셨다. 그리고 지하철 막차를 놓쳐서 할증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까 고민을하다가 그냥 2-3시쯤 택시를 타고 들어갔다. 그리고 아침 7시 쯤 이었을까, 그냥 눈이 떠져서 일어나서 밖에 나가 담배를 하나 피우고 집에 들어와서 손을 씻고 방에 들어왔다. 그리고 장례식에 참석했으면 좋겠다는 R의 문자를 받았다. 

문자를 받았을 때 그냥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그 때 내가 쓰던 햅틱 휴대폰을 쳐다보고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우리 집 앞에 롯데마트에 가서 한 번도 살 일도 할 일도 없는 검은색 넥타이를, 매고 가야될 것 같아서 샀다. 한 번도 매본 적이 없었던 넥타이를 점원에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지금은 사라진 9800번 버스를 타고 강남으로 향했다. 인천에서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은 너무 멀었다. 버스에서 정말 아무런 생각없이 앉아서 밖에만 보고 있었는데, 유난히도 길이 막히는 날이었다. 그리고 유난히 햇볕이 강했던 날이었다.

적어도 두시간은 걸렸다. 올림픽대로를 빠져나온 후에 일단 장례식장까지 갈 방법은 택시밖에 없을 것 같아서, 택시를 타고 갔다. 차라리 지하철을 타고갔으면 더 빨리 갔었을텐데, 길이 너무나도 막히던 날이었다. 장례식장 앞에서 내린 후에 바로 들어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 앞에서 게토레이와 담배 한 갑을 사고 담배를 피고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텔레비전 화면은 분향소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파란색 배경에 이름과 사진이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한 층 아래로 내려가 분향소에 가려고 했지만, 무서웠다. 장례식장 자체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몇몇 아는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때 아마 실감이 났었던 것 같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이 눈물이 나서 화장실 변기칸에 들어가서 울었다. 아주 많이 울었다. 

너무 많이 울어서 이제는 짜낼 눈물도 없을 거 같을 때 나가서 영정사진 앞으로 갔다. 처음 든 생각은, 왜 저 사진을 썼을까? 였다. 아마도 고등학교 내지는 중학교 다녔을 때 찍은 증명사진인 것 같은데, 대학교에서 봤을 때 모습이 훨씬 더 세련되고 멋졌다. 괜히 우리 과에서 제일 예쁜 사람으로 항상 여겨지는 건 아니었다. 왜 저 촌스럽고, 지나가던 초딩을 붙잡고 찍은 것 같은 후진 사진을 썼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눈을 감고 앞에 서있었다. 끝내 정확히 누군지 물어보진 못했는데, 분향소에는 S의 첫번째인지 두번째인지의 언니가 서있었다. 나는 눈을 다시 뜨고, 앞에 두 무리로 나누어 쌓여있던 국화꽃 한 송이를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옮겼다. 그 여자는 웃었다. 아마도 그렇게 하는 게 아니였던 것 같다. 그리고 아직도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장례식에 왔던 그 당시엔 좀 친한 편이었던 L이 말을 걸었고 대화를 하던 중, 뒤에 S의 아버지가 그의 친구 내지 직장 동료로 보이는 다른 남자와 대화에서 S는 약물 부작용으로 하루 아침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불쌍했다. 그 전부터 아팠던 걸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적어도 몸이 점차 나빠져서 죽었던 것으로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 치료 중에 약물 부작용이었다니. 그냥 어제 어쩌다가 까먹고 그 약을 먹지 않았으면 뭐가 달라져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뭐하고 지내는지에 대한 L과의 대화 중 나는 가슴이 실제로 아팠다. 그냥 비유적인 표현이 아닌 실제로 명치 윗 부분을 두툼한 모서리로 꾸욱 누르는 느낌이었다. 

다시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봤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서 변기칸에 들어가서 또 엉엉 울었다. 더 오래 울었던 것 같다. 그리고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을 때 나갔고, 우리 과 사람들은 다 같이 밥이라도 먹자고 했다. 가기 싫었다. 근데 그냥 같이 나갔다. 같이 있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장례식은 나만 처음이 아니었다. 거의 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다들 낯설어했다. 물론 대학교 2학년이 장례식에 낯설지 않은 것이 더 낯설겠다. 뭐 어떤 특별한 것이라도 하고 싶었는 지, 남산에 가자고 했다. 아마도 15명 가까이 되던 그 많은 사람이 검은색, 하얀색 조합의 옷을 입고 남산에 올라가서 자물쇠를 하나 채웠다. 그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싫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냥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그들의 모습은 나와 달랐다. 그리고 그들도 나를 그들과 다르게 봤다. 아마도 눈치없게 계속 죽상이었겠지.

그리고 며칠 후 화장을 하고 분당에 있는 메모리얼 파크로 유골이 옮겨질 예정이었다. 평소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H는 여느때와 같이 남성스러움을 강조하며 함께 관을 옮기는 무슨 그런 퍼포먼스를 돕자고 말했다. 나는 승낙했다. 

아직까지 정말 너무나 깊게 미안한 마음을 느끼는 건 (물론 S에게, H가 아닌), 그 예정이 있던 날 아침 나는 또 버스를 탄 것이다. 왜 그랬을까. 아마 지하철보다는 가끔은 빨리 갈 수 있으니 그랬겠지. 근데 역시나 길이 너무나 막혔다. 정말 너무너무너무나 막혀서 버스 안에서 정말 화가 많이 났다. 그렇게 나는 그 관을 옮기지 못했고, 화장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고, 모든 절차가 끝난 후에 함께 장례식장 버스를 타고 분당으로 향했다.

그 장례식장 버스 안에서, 나는 정말 슬펐다. 정말 조용한 버스였는데 우는 소리를 감출 수 없었다. 그렇게 H의 토닥임을 받으며 메모리얼 파크에 도착했다. 

유골함을 기껏해야 아파트 우편함 두 개 크기정도의 구멍에 넣고 대리석으로 된 작은 문을 닫아버렸다. 신기했다. 아무리 S가 말랐었지만 그래도 키는 170은 안됐어도 165는 넘었을 텐데, 그 돌로 만든 네모난 칸에 들어가다니. 신기하긴 했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기도를 하던 중에 나가서 담배를 피웠다. 아마 지금은 피울 수 없겠지.

그리고 모든 절차가 끝나고 S의 가족들은 그 곳에 온 사람들과 악수를 했다. 그리고 나와 우리 과 사람들은 옆에서 따로 간단한 대화를 했다. 그러던 중, 그때 반수를 한다고 학교를 휴학하고 그 해에 결국 서울대에 간 J가 슬픈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몇몇 우리 과 사람들은 그들 진심어리게 다독였다. 왜냐하면 J는 S를 좋아했었고, 과 내에서 사람들은 종종 J를 이런 이유로 놀리곤 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전혀 J에 대해 악감정은 없었고 지금도 없지만, 나의 슬픔과 J의 슬픔은 무게가 달랐다. 

그 땐 나도 인정받고 싶었다. 나 정말 슬펐고, 눈물도 많이 흘렸고, S가 죽어버리기 전에 정말 진심으로 좋아해서 다른 친구들한테 얘기도 많이 했었다고, 나도 좀 토닥여 달라고, 마음속으로는 원했던 것 같다. 

그렇게 일 년 정도가 지났을까, 나는 별로 한 것이 없었다. 그냥 있었다. 뭐라도 될 수 있을 것처럼 호기롭게 신림동에 방을 구해서 살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놀았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휴대폰을 바꾸고 싶어서 염치없이 그냥 바꿨다. 그 땐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번호 자체를 바꿔버렸다. 그리고 바꾸기 전, 내가 연락하고 싶은 사람들만 네이버 주소록에 저장해두고 바뀐 번호에 등록을 하고, 번호가 바뀌었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한 20분 정도 지났을까, S에게서 전화가 왔다.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던 것 같긴한데, 일단 받았다. S의 아버지였다. S의 아버지는 혹시 무슨무슨 영업소 과장님 아니냐며 물었다. 그 번호는 여전히 남겨두었었나보다. 그리고 나는 그게 아니고, S의 같은 과 동기였다라고 대답했고, 서로 그닥 유쾌하지않은 목소리로 알겠다며 끊었다. 마음이 너무나도 허전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것에서 S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후에 한 번 S가 있는 곳에 가보고 싶은 생각에 분당으로 갔다. 차 없이 가기엔 다소 힘든 길이었다. 도착했을 때는 네시 쯤이었다. 그리고 곧 해가 져버렸고, 터벅터벅 내려갔다. 눈이 오던 날이었다.

그 때 한 아저씨가 하얀색 진돗개 한 마리와 함께 가고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려가는데 한 50미터 남짓 되는 거리에서 그 개는 나를 계속 쳐다봤다. 적어도 2-3분은 계속 쳐다보고 있었고, 아저씨는 멀찌감치서 그 개의 이름인 '덕구'를 계속 불렀지만 계속 나를 쳐다봤다. 덕구는 왜 그 때 나를 계속 쳐다봤을까? 이상하게 덕구가 S와 함께 떠오른다.

영국에 있으면서 정말 간혹, 생각이 나곤 했다. 


'그리도 순수하다던' 의 일촌명으로 나에게 일촌신청했던 S의 싸이월드는 이미 모든 걸 비공개로 바꿔놓았다. 아쉽다.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한 번쯤은 읽어보고 싶다. 

그가 써놓은 'unmade'는 무슨 의미일까, 나에게 보라고 추천했던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무슨 생각으로 보고 나에게 말해줬을까, 그의 미니홈피 배경음악이었던 Priscilla Ahn의 Dream은 아직도 가끔 듣는다. S는 가사가 무슨 뜻인지 알고 배경음악으로 했을까?

마음이 또 다시 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