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Oct 2018] 생명권의 절대적 지위에 대해.

사형제도와 생명권, 그리고 그것들을 논증하는 것에 있어 절대성과 헌법합치성 
(이준일의 인권법 p. 29)

책의 1장 ‘사형제도와 생명권’에서는 생명권이 제한될 수 있는가에 대해 논의를 한다. 사형제는 국가가 인위적으로 특정 대상의 생명을 종결한다는 의미에서 생명권을 제한하는 형벌이기 때문이다. 

생명권은 언뜻 절대적인 우월지위를 지니고 있어 보인다. 생명체로서 인간의 생명이 유지된다는 전제하에 다른 권리와 가치가 실현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생명권은 어떤 기본권과 충돌할 수 없고, 충돌할 소지가 있는 경우 무조건적 보호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어떤 이유로든 결과적으로 피집행자의 생명권을 제한하는 사형제는 허용될 수 없다.

그러나, 전제조건을 바꿔 생각해 생명권이 절대적이진 않다고 본다면 그 권리의 제한 가능성을 열어둔다. 생명권도 다른 기본권이나 가치들과 같이 논증할 수 있다면, 생명권은 절대적 기본권이라 볼 수 없다. 생명권도 경우에 따라서 제한될 수 있는 기본권이라는 논증이 가능하다면, 사형제가 허용되는지에 대한 논의 또한 가능하다.

실정법적인 관점에서, 현행 헌법 제37조 제2항은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한,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또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즉 모든 기본권은 제한될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 상태다. 그리고 기본권 중 하나인 생명권도 제한될 가능성은 열려있다. 따라서 사형제는 적어도 헌법상 불합치한 기본권의 제한은 아니다.

그러나, 기본권 및 생명권이 제한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제한이 무제한으로 가능한 건 아니다. 형식적인 토대가 존재하는 것과는 별개로, 기본권을 왜 그리고 어떻게 제한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당한 사유가 필요하다.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사회적으로 합의되어 보호되고 있는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생명을 유지하는 권리는 적어도 절대적이진 않고, 적어도 현행 헌법상 제한이 불가능한 가치는 아니다. 비록 아직 사형제에 대해 논의는 하지 않았지만, 사형제가 타인의 생명에 작위적으로 관여한다는 것이 사형제 불허용의 절대적 근거나 헌법상 근거는 아니라는 결과를 도출한다. 사형제의 정당성에 대해 논의하며 생명권에 대해 심도있게 생각해보자.



정당성을 판단하는 것에 있어 비례의 원칙을 기준으로 할 수 있다. 여기서 비례성 원칙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수단은 그 목적과의 관계에서 비례적이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구체적으로는 수단이 특정 목적의 실현에 적합한지, 그리고 그 목적실현에 다른 수단과 구별될 정도로 필요한지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본권을 제한하는 수단으로서의 사형제에 관한 논의에서 필요한 건 우선 사형제의 목적이다.

사형제도는 그 수단으로써 범죄를 예방하는 공익적 목적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존재 자체를 통해 잠재적인 범죄자가 범죄에 가담하는 것을 저지하는 ‘위하력’이 주요 쟁점이다. 다시 말해, 사형제도의 위하력이 있는가에 대한 답이 필요하고 위하력이 없다면 목적의 실현 가능성이 증명될 수 없다. 따라서 만약 사형폐지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형제도와 범죄율의 관련성 여부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면, 사형제는 (만약 필요할지라도) 적합한 수단이 아닐 수 있다.

사형제도는 그 수단으로써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하자. 이는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형제는 적합한 수단일 수 있다.

그러나 단순 격리의 목적이라면 생명권을 제한하지 않는 종신형이 대체할 수 있다. 이 경우 사면, 감형 또는 가석방 등 사회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종신형을 받은 범죄자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건 부적합하다. 생명권을 제한하지 않으면서 같은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사형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보다 덜 적합한 수단일 수 있다.

사형제도는 특정 목적 달성을 위해 종신형보다 덜 적합하지만 필요한 수단이라고 하자. 두 형벌은 모두 범죄자가 사회로 복귀할 가능성이 없다. 모두 가혹한 형벌이라는 점에서 범죄를 예방하는 공익적 목적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사회로부터 격리된다는 점에서 사회구성원을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목적 또한 이룰 수 있다. 즉 두 가지 모두 목적에 적합하다는 근거는 있다.

그러나, 법관의 오판가능성을 논거로 추가하면 사형제의 필요성에 대한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회복불가능성이라는 사형제도의 치명적인 한계는 생명권을 불필요하게 제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는 부적합 및 불필요를 넘어 무고한 생명이 사법적으로 종결된 정의롭지 않은 결과다. 따라서, 사형제도는 (만약 적합하더라도) 잠재적인 위험성이 크므로 목적을 위해 필요한 수단이 아니다.

법관의 오판가능성이 다른 수단으로 보완된다면 사형제는 적합하고 필요한 수단일 수 있다. 수단과 목적 간의 비례성을 측정하는 것에 있어 수단으로서의 사형제도가 갖는 위험성 때문에 집행될 수 없다면, 위험성을 제거하여 특정 목적을 실현하는 적합하고 필요한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형 선고 후 집행까지 유예기간을 두어 심사과정을 거쳐 집행한다면 오판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이 측면에서 사형제도는 반드시 실행 불가능할 정도로 위험성이 큰 제도는 아니다. 따라서 사형제는 목적을 위해 필요한 수단일 여지 또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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