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구매하기 전, 책 겉장에 있는 두어 줄의 추천사는 깊이 있게는 아니더라도, 내가 반드시 읽는 부분이다. 저자가 아닌 독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간결한 요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 『인간이란 무엇인가』 는 추천사가 없다. 이 책을 아주 짧게 소개하는 문장으로 보이는 저자 백종현 교수의 문장 두 개가 전부다.
이 부분에 대해 처음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책을 두 번째 읽었을 때 무언가 뇌리를 스쳤다. 저자 또한 독자라는 것을. 그리고 (현상학 용어를 빌리자면) 저자는 이 책의 주제인 칸트철학을 포이에시스(poiesis)적으로 만들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이해하고 프락시스(praxis)적으로 온전히 전달하는 메신저임을. 그래서 저작물에 대한 타인의 평가보다는 칸트철학으로부터 인간의 조건 일반에 대한 실천적 방향을 담은 문구를 책 겉장에 쓰기로 판단했음을.
저자 백종현 교수는 이 책 독자의 범위를 “이미 한 번쯤은 칸트 책을 보았을”(백종현, 2018, p. 4) 집단으로 한정한다. 그리고 “지식인에게 칸트는 읽어내지 않으면 안 될 책무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Ibid.)는 문장으로 책의 서문을 연다. 어떤 사람들에겐 단순히 이야기의 시작을 장식하는 미사여구로 인식될지도 모르겠다. 이미 한 번쯤은 칸트 책을 본 집단에 내가 속하지 않았다면, 그 ‘어떤 사람들’과 비슷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적어도 생면부지는 아니었던 칸트를 이 책을 통해 한 번 두 번 다시 읽으며 곱씹던 중, 저 문장은 이 책의 제목이 묻는 인간 존재를 알아내야 하는 목적으로 삼았고, 그 달성을 위한 자세를 함축한 것이었음을 알았다.
이 책은 과거의 인물인 칸트를 다룬다. 그리고 책을 통해 저자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유명한 말을 빌려) 존재의 집으로서의 언어를 독자에게 전달한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결국 이 책은 과거의 존재를 탐구해 내려는 책이고, 이 책의 저자 백종현 교수는 그 존재를 그의 언어를 통해 온전히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백종현 교수는 이 책을 통해 한국인이 아닌 칸트가 한국어가 아닌 언어로 쓴 칸트의 사유를 한국어를 사용하는 독자에게 한국어로 온전히 전달할 목적성을 갖고 칸트철학에 담긴 인간 존재에 대한 진리를 전달하려 한다.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내려는 칸트의 시도. 그리고 그 칸트의 시도를 전달하려는 백종현 교수의 시도. 그리고 이 두 가지 시도를 이해하려는 나의 시도. 이 시도들은 얼마 전 오랜만에 읽었던 에드워드 카(E. 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원제 : What is History?)와 함께 사슬로 연결되는 것 같다.
“[...] The second observation is that the necessity to establish these basic facts rests not on any quality in the facts themselves, but on an a priori decision of the historian.” (Carr, 1987 [1961], p. 11)
거칠게 번역하자면, 위 문장은 기본적 사실을 정할 필요성은 사실 그 자체의 어떤 성질이 아니라 역사가의 선험적 결정에 좌우된다는 내용이다. 과거의 흔적을 다루는 저작가의 올바른 길 중 하나를 제시해 국내외로 인지도가 높은 문장인 것 같다.
저 위에 있는 칸트, 백종현 교수, 그리고 나의 시도들은, “모든 주관적 경험에 앞서 있으면서, 대상들에 대한 인식을 비로소 가능하게 하는”(백종현, 2018, p. 120) 방법으로 “객관을 규정”(Ibid.)한 시도이며 (칸트에게), 그렇게 하고 있는 시도이며 (저자에게), 그렇게 하고 싶은 시도였다 (나에게). 많은 번역서에서 ‘선험적’으로 번역되곤 하는 용어, 이 책의 저자는 ‘초월적’으로 번역해야만 한다는 용어, 트란첸덴탈(transzendental)의 용법이다. 여기서 어떤 번역어가 맞는지 분석하긴 나의 역량은 가소롭다. 하지만, 칸트, 백종현 교수, 그리고 에드워드 카가 시대와 공간을 거슬러 공유하는 건 자명해 보인다. 어떠한 존재가 담긴 언어를 트란첸덴탈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트란첸덴탈적으로 보편적인 사실로 창조하는 것에 대해 기술(記述)자는 책임, 더 나아가 의무를 지녀야 함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칸트를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어 저 공유점에 접근할 자격이 못 된다. 그러나, 칸트의 의무론적 접근방식은 익숙하다. 나의 이러한 미성숙한 익숙함은 칸트를 읽어내는 것이 책무임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아직 그 책무를 이행하지 않은 상태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여기서 저자의 생각을 따라 내 경험을 돌이켜보는 시도를 해보려 한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상상력을 덧붙여 보려 한다. 내가 과거에 『인간이란 무엇인가』을 읽었음을.
나는 영국에 한 대학교에서 범죄학(Criminology)을 전공했다. 범죄학(Criminology)에는 사법 정의(Criminal Justice)라는 큰 맥이 있다. 이 맥의 근원에는 하지 말아야 하는 한 개인의 행위를 어떻게 합법적이고 적법하게 비난해야 하는가, 혹은 비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놓여 있다. 형사 처분을 비롯한 모든 국가적 차원의 무력행사는 필연적으로 개인 자유에 대한 제약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이 이유를 백종현 교수의 다른 저작을 인용해 다시 생각해보면, “인간을 인(人, Person) 내지 인격(人格)으로 만드는 원리[인 자유는] 인간의 인간됨의 제일 원리이자, 시민사회 내지 국가의 성원인 ‘시민’ 내지 ‘국민’의 본질적 요소” (백종현, 2014, p. 24)이기 때문이다. 국가와 개인의 관계는 데카르트의 관점에서의 기계론적인 관계도, 홉스의 관점에서의 계약으로 만들어진 인공적인 관계도 아니다. 칸트의 관점에서의 “자율성에 기반하고 있는 인격성”(Ibid., p. 159)의 관계다. 인격의 완성은 그 인격체 주체의 의무이듯, 국격의 완성은 그 국격체에 속한 인격체들의 의무다. 상황에 따라 분해할 수도 해약할 수도 없는 하나의 유기체였다. 내 과거는 저자 백종현과 그에 의해 전달되는 칸트를 통해 재창조되었다. 재창조의 대상은 내 과거의 학문적 경험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나의 전부였다. 따라서 한 존재로서의 나는 저자 백종현에게 비추어 알아 차려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상상력과 지성의 앙상블에서[의] 쾌감”(백종현, 2018, p. 227)을 이 책을 통해 찾았다. 나의 지난 경험을 나의 이성 세계에서 창조하는 것의 과정은 여간 쉬운게 아니다. 그리고 이 경험을 초월하는 어떤 진리를 발견하는 것은 아직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역량 부족이 곧 나의 존재 일반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갖는 것을 포기할 것이란 건 아니다. 이 의문가짐은 인간으로서, 인격체인 나를 알아가는 주체자의 책무임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백종현 교수의 생각과는 다르게 나는 생각한다. 지식인뿐만 아니라 내가 아닌 다른 것에만 책임과 의무를 느끼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칸트철학을 읽어내는 건 의무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 그들 또한 이성과 자유를 지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의무 이행에 주도적으로 이바지하는 백종현 교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참고문헌
백종현. (2014). 칸트에서 선의지와 자유의 문제. 인문논총, 71(2), 11―42
백종현. (2018). 인간이란 무엇인가. 아카넷
Carr, E. H. (1987[1961]). What is History?. 2nd ed. Harmondsworth, Middlesex: Penguin Books